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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성모 마리아 품처럼 아늑한 치유의 성지,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 소음과 일상생활 속 무게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남양성모성지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공원처럼 보이지만 이 땅은 150여 년 전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박해의 시대에 무명의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숭고한 순교의 터전이다. 이와 동시에 오늘날에는 그 고통의 시간을 품고 묵묵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성모 마리아의 품과도 같은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년)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붙잡혀 와 고문과 형벌 속에서도 끝내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장소이다. 역사적 기록에 이름이 남은 이들은 네 사람, 충청 내포 출신의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의 정 필립보, 수원의 김홍서 토마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많은 이름 모를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위해 피 흘리며 생을 마감했다. 당시 남양은 조선 시대 도호부사가 주재한 사법·행정의 중심지였고 수도권과 가까우며 중국과의 연계도 수월한 지리적 특성상 신앙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박해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은 수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그렇기에 남양의 이 성지는 가벼운 신앙 공간이 아니다. 이곳의 땅은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거룩한 저항의 흔적과 묵묵한 순명의 숨결이 새겨져 있다.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오늘날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남양성모성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순교자들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졌고 황량한 땅으로 방치되었다. 하지만 1983년을 기점으로 신자들의 정성으로 하나둘씩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선포되었다. 이는 성모님의 품과 같은 위로의 공간으로 남양이 다시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남양성모성지는 단지 교회적 차원의 성역을 넘어서 지역사회와 신자 모두가 함께 가꿔온 공공의 거룩한 공간이 되었다. 성지는 화성시가 선정한 ‘화성 8경’ 중 하나로 지정되며 도시의 상징이 되었고 전국 각지의 순례객뿐 아니라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남양성모성지는 일반적인 성지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 초기에는 설계 도면도 없이 하나하나 신자들의 손길과 기도로 땅을 사들이고 길을 열며 만들어졌기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구성이 특징이다. 대형 화강암으로 조성된 ‘묵주알 조형물’은 남양 순교성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묵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또한 그리스도 왕상, 성모 동굴, 요셉 성인상, 오솔길 소자상 등의 조형물과 산책로는 기도와 명상, 사색을 위한 최적의 공간을 제공한다. 조용히 걷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느 순간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현재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대성당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예술과 신앙, 역사와 미래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이 대성당은 남양성모성지를 더욱 풍성한 의미의 공간으로 확장시킬 것이다.

 

 

이 성지는 신앙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열린 휴식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지친 사람들, 일상에 번아웃된 이들, 혹은 그저 조용한 장소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곳은 쉼표가 되어준다. 성지 내에는 한국어로 된 성지안내 영상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안내 시스템도 갖추고 있어 외국인 방문자도 불편함 없이 성지 체험이 가능하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 미사가 봉헌되며 주차 공간은 유료(3시간 2,000원 / 종일 12,000원)로 마련되어 있다. 반려동물 출입은 제한되니 참고가 필요하다.

 

 

또한 성지 한편에는 깔끔하게 관리된 화장실과 안식처가 있어 하루 종일 머물러도 불편함이 없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기도가 되고 묵상이 된다.

 

프로필 사진
김시창 기자

타임즈 대표 김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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