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도시의 삶은 종종 너무 빠르다. 말 없는 풍경마저 소음이 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잠시 멈추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을 가장 조용히 받아주는 공간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성남시 수정구 관할의 남한산성 일대다. 이곳은 유적지, 등산 코스를 넘어 시간을 따라 걷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내면의 여정지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에 걸쳐 펼쳐져 있는 국가사적이다. 본디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를 대표하는 명소라고 알려져 있다. 반면 성남시가 품고 있는 남문 일대 역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돌과 흙, 고요한 숲길, 그 속에 녹아든 성남 시민의 호흡은 이 지역을 하나의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성남 수도권 지하철 산성역에 내려 ‘남한산성 입구’라 불리는 초입 그리고 남문, 지화문에 다다를 수 있다. 이 성은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단단한 돌 계단, 웅장한 문루, 이어지는 성곽은 침묵 속에서 자신이 지나온 역사를 드러낸다. 이곳을 지킨 수많은 이들의 고요한 발자국이, 오늘 걷는 이의 심장 속으로 스며든다.
성남시는 이 구간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정비해 과거와 현재가 포개지는 장을 마련해두었다.

성남시가 관리하는 남한산성 등산 코스는 그 자체로 서사다. 1코스는 가천대역에서 시작해 영장산 능선을 타고 남문에 이른다. 2시간 남짓의 여정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각은 훨씬 더 깊고 길다. 도심의 소리가 천천히 멀어지고 숲의 숨결과 새소리, 나무의 바람결이 그 자리를 채운다. 걷는 이의 마음이 조금씩 낮아지고 눈은 높아진다.

어디선가 돌담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오래전 이 길을 걸었을 이름 모를 군사나 백성이 있었다. 그들도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여전히 견고하고 조용하며 그 시간을 말없이 품고 있다. 형제봉을 지나고 망덕산을 오르면 성남시의 전경이 펼쳐진다. 성과 산과 삶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은 누구에게든 잠시 멈추게 할 힘이 있다.
성 안에는 오래된 사찰 하나가 있다. 봉국사. 왕실의 원찰로 지어진 이 절은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다. 그러나 단단하고 정제된 기운이 절 마당 전체를 감싸고 있다. 대광명전 앞에 서면 무언가가 가만히 내려앉는다. 말 대신 마음을 쓰다듬는 고요가 있다. 사계절 내내 다른 빛으로 변하는 이곳은 성남시가 선정한 ‘성남 9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종소리에 잠시 눈을 감고 누군가는 목어 앞에서 멈춰 선다. 그 모든 시간이 조용히 흐른다. 종교적 감흥을 떠나 이곳은 그 자체로 정돈된 마음의 공간이 된다.

남한산성은 걷는 이의 시간이자 이 도시의 숨결이다. 관광지로서의 기능도 분명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여기는 보는 곳이 아닌 걸으며 존재하는 곳이다.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걷는 동안 사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자신과 역사, 도시가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성남은 이 남한산성을 그저 하나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이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도록 꾸준히 다듬고 있다. 그 결과 이곳은 언제나 조용히 제자리를 지킨다. 삶의 리듬이 빠를수록 이 고요한 산성과의 거리는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