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2 (수)

  • 흐림동두천 11.0℃
  • 구름조금강릉 17.4℃
  • 구름많음서울 11.4℃
  • 흐림대전 12.7℃
  • 구름조금대구 16.5℃
  • 구름많음울산 16.7℃
  • 흐림광주 11.3℃
  • 구름많음부산 16.4℃
  • 흐림고창 10.8℃
  • 흐림제주 13.0℃
  • 흐림강화 9.0℃
  • 흐림보은 11.6℃
  • 흐림금산 12.4℃
  • 흐림강진군 13.1℃
  • 구름많음경주시 16.8℃
  • 구름많음거제 15.3℃
기상청 제공
닫기

[기획특집]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곳,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유릉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릉이자 한국 근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품고 있는 명소다. 홍릉과 유릉을 합쳐 부르는 이곳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명성황후가 함께 잠든 홍릉, 대한제국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과 그의 두 황후인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가 안장된 유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홍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능이자 대한제국이라는 짧은 황제국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 왕릉의 전통적인 구조와 명나라 황제릉의 양식을 일부 차용하여 조성된 특별한 형태를 지닌 능이기도 하다.

 

 

홍유릉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울창한 나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고요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흔적을 만나게 된다. 홍유릉은 조선왕릉들과 달리 황제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대한제국이 황제국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기존 조선 왕릉과 차별화된 구조를 띠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전통적인 조선 왕릉에서는 볼 수 없던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등의 석수가 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데 이는 중국 황제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러나 홍유릉이 중국 황제릉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 조성된 것은 아니고 조선 왕릉의 기본 형식을 유지하면서 황제릉의 특징을 가미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홍릉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과 그의 황후였던 명성황후의 능이다. 명성황후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후 처음에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근처에 안장되었다. 이후 서울 청량리로 이장되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그의 유해를 명성황후와 함께 합장하는 형태로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다시 이전하였는데 이곳이 현재의 홍릉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3.1 운동이 발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고종의 사망 소식과 함께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는데 이는 대규모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자주독립을 외쳤던 고종이었기에 그의 장례식은 조선인들에게 더욱 의미가 컸다.

 

 

홍릉 바로 옆에는 유릉이 자리하고 있다. 유릉은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과 그의 두 황후인 순명효황후와 순정효황후가 함께 안장된 능이다. 순명효황후는 1904년 사망하여 처음에는 서울 용마산에 안장되었으나 후에 순종이 사망하면서 함께 합장되었다. 순정효황후 또한 1966년 서거하면서 유릉에 함께 안장되었다. 세 사람을 한 봉분에 함께 안치한 것은 홍유릉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홍유릉이 만들어진 과정에는 대한제국의 비극적인 역사가 녹아 있다. 원래 왕실의 예법에 따르면 왕비가 먼저 사망할 경우 그녀의 무덤은 별도의 능호를 가지고 있다가 왕이 승하한 후 합장하면서 왕의 능호를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면서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새로운 능호를 부여받을 수 없었다.

 

일본은 왕공가궤범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대한제국 황족들의 무덤을 능이나 원이 아닌 묘로 규정하였는데 이에 따라 새로운 황제릉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이미 존재하던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명효황후의 유릉을 활용하여 고종과 순종을 각각 합장하는 방식으로 황제릉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홍유릉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흔적이자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역사적 공간이다. 고종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 3.1 운동이 일어났고 순종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에는 6.10 만세운동이 발생했다. 이 두 가지 사건만 보아도 홍유릉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홍유릉은 조선왕릉 중 마지막으로 조성된 능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건원릉에서 시작된 조선왕릉의 역사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모든 조선 왕들의 유해가 능 지위를 받은 채 안장되면서 홍유릉에서 마무리되었다.

 

홍유릉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여러 왕족들도 함께 안장되어 있다. 의민황태자(영친왕)와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함께 잠든 영원(英園), 영친왕의 차남이자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리는 이구의 묘인 회인원(懷仁園),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과 그의 부인이 안장된 의친왕묘가 있다. 이 밖에도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인 장씨, 귀인 이씨 등의 후궁 묘역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홍유릉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도 있다. 능역 주변에는 넓고 조용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긴다. 특히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겨울에는 능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매년 8월 15일에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걷기 대회가 열린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인기 있는 산책 명소이기도 하다.

 

홍유릉을 방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춘선 금곡역에서 내려 23번 버스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된다. 또한 중앙선 도농역에서 1-4, 23, 30, 65번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도착할 수 있다. 홍유릉의 입장료는 1,000원이며 남양주시민이라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홍유릉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함께 아우르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한국 근대사의 격변을 마주하게 된다. 대한제국의 흥망성쇠, 일제강점기의 비극, 독립운동의 정신까지 모두 이곳에 스며 있다. 고요한 능역을 걸으며 역사의 흐름을 되새겨보는 것은 여행자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프로필 사진
김시창 기자

타임즈 대표 김시창

PHOTO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