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은 11월 15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한국의 전통 민화(民畫)로부터 한국적 팝아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의 작품은 작자 미상의 전통 민화 27점과 더불어, 현대미술 작가 권용주, 김상돈, 김은진, 김재민이, 김지평, 박경종, 박그림, 백정기, 손기환, 손동현, 오제성, 이수경, 이양희, 이은실, 이인선, 임영주, 조현택, 지민석, 최수련 총 19인의 작품 102점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주제에 관한 질문
이 전시는 네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민화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팝아트는 어떤 양상을 이루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K아트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민화와 팝아트의 사이에서 K팝아트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이다. 전시의 전 과정 안에서 이 질문들은 매 시점 각양각색으로 떠오르는 답을 비출 것이다. 이 열린 가능성 안에 한국 현대미술에서 바라보는 민화 그리고 K팝아트를 조명하고자 한다.
전시 길잡이로서 세 가지 세계관
이 전시는 위와 같이 민화와 팝아트의 교차점에서 예술적 열망과 해학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생애의 사유에 따라 세 가지 세계관으로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더 나은 현세(現世)를 위한 이상향의 염원 ‘꿈의 땅’, ▲해학적 삶의 태도 ‘세상살이’, ▲내세(來世)에 대한 상상 ‘뒷경치’로 전시의 소주제가 구성된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러한 삶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 지금의 시대적 예술적 자장(磁場)에서 발현되는 바를 살펴보며, 민화와 팝아트의 연관성 속에서 K팝아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세계, 꿈의 땅
화조도(花鳥圖)나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등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에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장수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탐스러운 과일과 쌍을 이룬 새, 화려하고 옹골진 꽃과 나무, 신비로운 기물과 풍경 등이 소주제인 ‘꿈의 땅’ 섹션에서 펼쳐질 경관이다. 글자들이 펼쳐진 그림에는 장수와 복의 의미나 이상적 이념을 다지는 뜻이 담겨있다. 넝쿨진 포도에는 알알이 맺힌 열매처럼 다산(多產)과 번성의 염원이, 영험한 동물로부터는 액운(厄運)을 떨치고자 하는 바람이, 덕목을 다지는 문자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세속의 삶에서 그리는 이상향에 담긴 기복과 염원의 민화적 태도는 현대미술 작품에도 발견된다. 팝아트가 소비사회의 상품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신성시하는 사회를 반영했듯, 전시 작품들은 지금의 사회가 속세의 일상으로부터 신성화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예술로써 반추하도록 한다. 현대 사회의 욕망과 이상의 혼성적 풍경이 꿈의 땅으로 초대한다.
두 번째 세계, 세상살이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나 상황들은 어디 하나 똑같은 표현 없이 각각의 재치 있는 형태로 만물에 대한 해석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한 눈을 한 호랑이, 털이 쭈뼛 선 호랑이, 또 이러한 호랑이를 향하고 있는 야무진 까치, 민화의 호작도(虎鵲圖)에는 이처럼 익살스러운 동물의 모습이 등장한다. 벽사(辟邪)의 상징을 지닌 호랑이의 상징도 양반이라는 비유가 덧대어지면 위계를 해학적으로 전복하는 시도로 읽힌다.
호작도 외에도,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나 상황들은 어디 하나 똑같은 표현 없이 각각의 재치 있는 형태로 만물에 대한 해석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산업사회의 산물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나 제작 방식을 작품에 도입하여 고상한 예술의 경계를 위트 있게 전복한 팝아트의 태도도 이러한 접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작품들에서도 사회와 삶을 관찰하며 권위와 부조리를 초극하고 풍자로 묘사한 세상살이의 이야기, 미(美)의 전통적 기준을 기지 있게 반전시킨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째 세계, 뒷경치
민화 중에는 기복과 주술, 해학적 태도 외에도, 초월적 세계에 대한 상상을 중심으로 하여 현세 구복(求福)과 벽사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그림들이 있다. 현세의 삶은 그 이후의, 혹은 너머의 내세에 대한 사유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민화에 담긴 토속신앙은 물론, 유교, 불교, 도교를 망라하는 종교적 도상과 신화적 상상은 삶을 관장하는 뒷세계의 경치로 이끈다.
무신도(巫神圖)나 신귀도(神龜圖), 심우도(尋牛圖),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등에는 신령스러운 동물과 인격화된 신, 추상적 세계를 상징하는 도상들이 서로 다른 개성으로 초자연적 영역의 존재들로 표현되어 있다. 주로 일상적 삶에 기반한 소재를 다룬 팝아트에서도 종교적 성화(聖畫)나 원시적 도상을 차용하여 현대의 사회와 문화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현대의 가치관, 종교, 대중문화, 미적 관점과 관련하여 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현재의 세계를 성찰한다.
민화, 삶 속의 그림
그림은 우리 주변 어느 곳에나 있다. 간판이나 가구의 문양, 옷의 무늬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도 장롱과 병풍을 비롯한 집 안 곳곳에 민화가 걸려있었다. 이처럼 민화는 생활 속에 함께 하는 그림이었다. 민화의 상징에는 세속의 삶에서 행복과 번성,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와 삶의 이상향이 배어있다.
해학, 풍자, 기복, 주술 등의 상징적 도상과 더불어 민화에는 다시점 형태, 오색빛 천연색, 우화적 표현 등의 다채로운 특색이 발견된다. 이처럼 삶의 다양한 시선, 태도가 담겨있는 만큼 삶 가까이에 있는 예술로서 민화는 인생의 여러 고개를 넘는 과정에서 건강과 안녕, 번영과 계몽적 삶의 가치 등을 다지는 창이었다. 삶, 즉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는 일과 관련해 민화는 입체적 면모로 생애의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현대미술에서 바라보는 민화
민화는 관념적 전통의 궁중이나 화원의 전문 예술 범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습되고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려졌다. 그만큼 그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민화에 대해 조자용은 “무명성, 실용성, 공예성, 상징성” 등을 지닌 한화(韓畫)로, 김호연은 ‘겨레그림’으로, 김철순은 서민층의 욕구를 반영한 비전문적이고 소박한 그림으로, 이우환은 ‘생활회화’이자 “조선 회화의 본령(本領)”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이처럼 민화는 그 해석에 대해 개방적이며, 대중의 삶 속에서 예술적 효력을 지닌다. 민화가 지닌 다양한 함의를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다채로운 가능성의 장(場)으로 조명하려는 전시이다.
민화와 팝아트의 접점
민화는 오랜 유래가 있지만 특히 조선 후기 계층과 사회, 경제의 변화와 더불어 성행한 이래 어떤 집단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으로 사랑받아 온 우리 미술의 한 갈래이다. 대중의 삶 가까이에서 그려졌던 민화의 문화적 위치는 현대미술에서 팝아트의 대중지향적 속성에 비견될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안에 담긴 삶과 세상살이의 태도를 팝아트의 면모와 더불어 주목해 보고자 한다.
한국 현대미술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민화의 요소가 표면적, 심층적 차원에서 이어져 왔다. 특히 세속적 욕망의 이미지가 혼성적으로 구현되거나, 사회에 대한 해학과 풍자의 시선이 담기고, 당대 대중문화를 수용한 특징 등에서 팝아트와 유사한 태도를 살필 수 있다. 이처럼 민화와 한국 현대미술의 팝아트를 연관하여 보고자 하는 이 전시는 민화적, 팝아트적 태도에 주목하여 K팝아트를 길어 올린다.
민화와 팝아트 사이에서 바라보는 K팝아트
전통 민화와 팝아트의 태도적 접점과 긴장 사이에서 작품들에 담긴 K의 양상을 때로는 민속적으로, 때로는 혼종적으로 등 유동적 양태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곧 한국 현대미술 면면에 나타나는 ‘한국성’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을 것이다. 민화와 K아트 사이에서 탐색해 보는 팝아트적 태도의 작품들을 영미권의 팝아트와는 각도가 조금 다른 ‘K팝아트’로 살펴보는 일이 한국 팝아트의 재정립을 위한 시금석 중 하나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알고 보면, 반할 세계
삶 가까이의 예술로서 민화와 팝아트의 관계 속에 너른 범주로 그려볼 K팝아트는, 생활을 영위하는 삶의 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 닮고 싶은 세계, 또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다채로운 경관으로 펼쳐낼 것이다.
전시장에는 아카이브 섹션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심도 있는 전시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민화 화집과 팝아트, K문화 관련 연구 자료를 열람하며 전시에 담긴 질문들을 숙고할 수 있다. 민화와 팝아트, K팝아트의 열린 개념 사이에서 각자의 호기심으로 전시된 작품을 만날 때, 알고 보면 반할 세계, 혹은 알고 보아야 반할 세계, 그리고 알고 보면 새로이 보일 세계가 기다릴 것이다.